• 최종편집 2024-03-29(금)

여주박물관·국립민속박물관 K-museums 공동기획전 개막 .. “여주, 영릉을 품다”

- 영릉의 천장과 여주사람들의 삶의 변화 과정을 살필 수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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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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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박물관·국립민속박물관 K-museums 공동기획전 개막 (1).jpg

  

 [여주=경기1뉴스] 한철전 기자= 여주박물관(시장 이항진)은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윤성용)과 함께 2020년 10월 12일(월)부터 12월 13일(일)까지 여주박물관에서 2020 K-museums 지역순회 공동기획전 “여주, 영릉을 품다”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여주(驪州)의 역사와 여주 사람들의 삶에 중요한 ‘영릉’을 주제로 세종(世宗)의 영릉(英陵)과 효종(孝宗)의 영릉(寧陵), 두 기의 왕릉이 여주로 오면서 여주의 역사와 여주 사람들의 삶에 미친 영향을 조명한다. 여기에는 『효종 영릉 천릉도감 도청의궤(孝宗寧遷陵都監都廳儀軌)』, 『선원보감(璿源寶鑑)』, ‘영릉참봉 교지(英陵參奉敎旨)’, ‘국기판(國忌板)’ 등 영릉 관련 조선 시대 자료와 ‘1970년대 영릉 정화사업 조감도’, ‘영릉 안내책자’, ‘여주 관광 사진첩’, ‘세종문화큰잔치 앨범’ 등 120여 점의 영릉 관련 생활사 자료가 함께 선보인다.

 

□ 영릉이 여주(驪州)에 자리한 이유

현재 여주에는 두 기의 조선 왕릉이 위치하는데, 바로 세종의 영릉(英陵)과 효종의 영릉(寧陵)이다. 두 왕릉이 여주로 온 시점이나 능호(陵號)는 다르지만, 한글 발음이 우연히 ‘영릉’으로 같다. 1부 ‘영릉, 여주에 오다’에서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여주로 왕릉이 옮겨진 지리적 배경과 강으로 이동한 과정을 전시자료로 보여주고, 그에 따른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두 영릉이 위치한 북성산(北城山)은 풍수지리상으로 산이 멈추고 물이 구부러지는 형세로서 자손이 번성할 수 있는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남한강을 끼고 있는 여주는 일찍부터 한양과 중부 내륙지방을 연결하는 수운(水運)의 중심지이면서 조세를 운반하는 조운로(漕運路)로서 사람과 물산의 이동이 용이했다. 이러한 지리적 배경으로 두 영릉이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왕실 족보의 성격을 가지면서 동시에 왕릉과 주변 산세를 그린 왕릉산도(王陵山圖)를 싣고 있는 『선원보감(璿源寶鑑)』 등 주요 자료가 소개된다.

 

또한, 세종의 영릉을 여주로 옮기면서 ‘여주목(驪州牧)’으로 승격되어 『여주목읍지(驪州牧邑誌)』가 편찬되고, 왕릉의 관리 업무를 담당하였던 ‘영릉참봉 교지(英陵參奉敎旨)’ 문서도 소개된다. 조선 시대 왕들은 선왕(先王)들의 무덤을 살피고 참배하기 위해 직접 여주로 행차하였고[陵幸], 한양에서 여주까지 가는 동안 각 지역의 농사를 살피고 백성들의 고충도 들어주었다.

 

이와 관련하여 ‘조선열성능행도 병풍(朝鮮列聖陵行圖 屛風)’과 1779년 여주에 능행한 정조(正祖, 재위: 1776~1800)의 명으로 세운 ‘대로사(大老祠, 효종의 북벌정책을 지지했던 우암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을 기리는 사당)’비의 탁본인 ‘대로사비 탁본첩(大老祠碑 拓本帖)’을 볼 수 있다.

 

□ 여주 사람들의 일상으로 들어온 영릉

2부 ‘여주, 영릉과 함께하다’에서는 여주 사람들의 삶에 자리한 두 왕릉의 의미를 보여준다. 여주 사람들은 수백 년 동안 영릉과 함께하면서, 왕릉을 모신다는 자부심과 더불어 세금 감면 같은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왕릉이 여주 사람들에게 혜택만을 준 것은 아니었다.

 

왕릉이 옮겨지면서 왕릉이 들어설 자리에 있던 묘는 강제로 옮겨야 했고, 그 일대 사람들의 생활 터전인 논밭과 살림집도 옮겨야 했다. 인근 백성은 보토 작업 같은 부역에 자주 동원되었으며 왕릉으로 인한 부담과 불편은 1960년대까지도 이어져서 주민들은 영릉의 여러 행사나 정비에 동원되었다.

 

 1970년대 영릉 성역화 사업 이후 영릉은 여주의 대표 문화 관광지로 탈바꿈하면서 지역 발전에 이바지했으며 영릉은 관광지의 의미를 넘어 여주의 얼굴로써 활용되고 있는데, ‘세종’과 ‘영릉’을 앞세운 상호, ‘여주대왕님표쌀’, ‘세종대왕릉역’ 등이 그 예이다. 그리고 여주 사람들에게 영릉은 왕의 무덤이라는 엄숙한 공간이 아니라 나들이 장소이자 추억의 공간이 되었고 영릉에서의 즐거운 추억을 간직한 사진에서는 여주 사람들의 일상에 자리 잡은 영릉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 영릉, 여주 사람들의 문화 자부심을 엿보다

이번 전시는 2012년부터 국립민속박물관이 지역 박물관과 진행하고 있는 ‘K-museums 지역순회 공동기획전’ 사업의 하나로, 상호 협업을 통해 우수한 지역 문화를 발굴·소개함으로써 지역문화 발전의 활력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주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의 이번 공동기획전은 영릉을 주제로 여주의 역사와 여주 사람들의 삶에 미친 영향을 재조명해 볼 뿐만 아니라, 이 전시로 영릉과 여주 사람들이 오랜 시간 맺어온 관계와 살펴보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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